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건국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험이라고 말한다. 자유를 중심 가치로 삼고, 그 원리를 제도와 사회의 작동 방식으로 실제로 세우겠다는 도전이었기에 그 말에는 일리가 있다. 미국은 그 실험을 이어가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로부터 약 170여 년이 지난 뒤, 한반도에서도 하나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경제 운영 방식을 택했다. 남쪽은 시장경제를, 북쪽은 계획경제를 선택했다. 차이는 분명했다. 시장경제는 개인과 기업의 선택, 경쟁, 교환을 통해 생산과 분배가 조정되는 반면, 계획경제는 국가가 목표를 세우고 생산과 분배를 조직한다.
이 실험이 특히 “실험”에 가까운 이유는 비교 조건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은 민족, 언어, 역사적 경험이 같았고, 출발 당시 경제 기반도 결정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산업 인프라나 자원 면에서는 오히려 북한이 더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따라서 이후에 나타난 격차는 외부 변수보다, 선택한 경제 운영 방식이 장기간 누적된 결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시간이 지나며 두 체제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시장경제를 택한 남한은 산업화와 교육을 빠르게 추진했고, 외부와의 교류를 확대했다. 개인과 기업은 성과를 통해 보상을 기대할 수 있었고, 경쟁과 투자, 혁신이 성장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위기와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생활 수준은 장기적으로 상승했다.
반면 계획경제를 택한 북한은 생산과 분배의 대부분을 국가가 통제했다. 시장의 역할은 축소되었고, 경쟁과 선택의 공간은 좁아졌다. 계획은 단기적으로 동원을 가능하게 하지만, 환경이 변할수록 조정이 어렵다. 잘못된 판단이 내려졌을 때 이를 빠르게 수정하기도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르며 비효율이 누적되고 자원 부족이 겹치면서 생활 수준은 정체되었고, 사회는 점차 외부와 단절된 방향으로 갔다.
이 실험은 단순한 이념의 충돌이 아니다. 같은 조건에서 서로 다른 경제 운영 방식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비교 사례다. 차이는 구호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노력과 결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서 드러난다.
결과는 비교적 명확하다. 개인의 선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그 선택의 결과가 경제 활동에 반영되는 구조는 성장과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반대로 계획과 통제의 비중이 큰 구조는 경직성과 폐쇄성을 키우며 장기적 정체로 이어지기 쉬웠다. 두 방식의 차이는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실제 삶의 조건에서 확인된다.
이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단은 지속되고 있고, 남과 북은 지금도 서로 다른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의 경험이 보여주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떤 체제가 더 인간의 삶에 적합한지 논할 때, 의도나 이상보다 결과를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는 개인의 선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이 더 잘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그 결론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실험의 공간이었다.
